낙태법 개정 관련 의료적 이슈와 산부인과의 입장
Medical Issues and Opinions of Obstetrics Regarding Abortion Law Amend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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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Abstract
There have been ongoing social discussions on revision of the abortion law since the Constitutional Court ruled it nonconformity to the constitution on April 11, 2019. Thus, Korean Society of Obstetrics and Gynecology, Korean Society of Maternal Fetal Medicine, Korean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s, and Korean Association of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s organized 'special committee for abortion law' to support social discussion on the revision of the abortion law, and they prepared official opinions of obstetrics for medical issues including doctors' right to refuse abortion. In the future, the committee will continue to adapt to changes of medical environment especially after the revision of the abortion law by collecting its members' feedbacks.
서 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업무상 승낙 낙태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청구한 위헌소원(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 3(단순위헌): 2(합헌)의 의견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며,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다(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2019).
이는 종전에 촉탁 낙태로 기소된 조산사가 제기한 위헌소원에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결정(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2012)과 배치되는 판결이다.
이번 판결의 헌법불합치 의견(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을 살펴보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이하 착상 시부터 이 시기까지를 ‘결정 가능 기간’이라 한다)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입법자는 결정 가능 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 가능 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와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 요건이나 숙려 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헌법 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재량을 가지며, 입법자는 늦어도 2020. 12. 31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하여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 1. 1.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1953년 형법의 제정부터 지속된 낙태의 죄에 관한 형법 제27장과 관련 법률로서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의 전면 개정이 불가피해졌다.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1)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헌법불합치, 2017헌바127, 2019. 4. 11.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1)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①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2)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3)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4월 11일 헌재의 판결 후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조정실은 합동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 부처가 협력하여 금일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2019).
한편 국회에서는 4월 15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형법 제269조와 270조(Lee, 2019b) 및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고(Lee, 2019a), 10월 30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모자보건법 14조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에서 ‘우생학적 사유’를 삭제하는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다(Jin, 2019).
또한 여성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낙태법 개정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학회(이하 학회)와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와 간선제, 이하 의사회)에서는 ‘낙태법특별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하여 낙태와 관련한 의료적 문제에 대해 산부인과의 입장을 정리하고 표명하여 우리 사회의 낙태법 개정 논의를 돕기로 하였다.
모든 회의에 당시 김세광 학회장과 김승철 학회 이사장이 참석하였고 이필량 차기(현)이사장과 김동석 직선제 의사회 회장도 참석하여 함께 논의하였으며 주웅 학회 사무총장, 김미경 사무총장보, 박정열 차기(현)사무총장이 배석하였다.
[낙태법특별위원회 구성]
위원장: 박용원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위원장
간사: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 법제위원
위원: 황경주 대한산부인과학회 정보위원장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법제위원장
서 경 연세의대 산부인과 명예교수
김영주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부회장
차동현 대한모체태아의학회 기획위원장
나성훈 대한모체태아의학회 윤리위원장
이영규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수석부회장
원영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
김재연 간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
김진학 간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
낙태법 개정에 있어 여러 사회적 쟁점이 중요하나 위원회에서는 사회적 쟁점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 의료적 이슈에 대해서만 논의하여 산부인과의 입장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본 론
4월 11일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위원회를 구성하여 5월부터 9월까지 매달 총 5회 회의하여 낙태시술에 대한 의사의 거부권 등 의료적 사안에 대한 산부인과의 입장을 정리하였고 이를 9월 20일 열린 학회 제105차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여 회원들에게 알렸다(Choi, 2019).
다음은 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과 정리된 입장이다.
1. 의료인이 낙태를 거부할 권리
헌재의 판결 다음날인 4월 12일 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청와대 국민청원홈페이지에 ‘낙태 합법화, 이제 저는 산부인과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이 회원은 “낙태가 합법화되고 낙태 시술이 산부인과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시술이 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고 하더라도 저는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접을 것입니다...(중략) 낙태 합법화가 되더라도 원하지 않는 의사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진료 거부권을 반드시 같이 주시기를, 그래서 낙태로 인해 진료 현장을 반강제적으로 떠나야 하는 의사가 없게 해주시기를 청원합니다.”(Cheong Wa Dae, 2019)라고 하였고 이 청원이 알려지면서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Park, 2019).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의료인의 낙태 거부권은 대체적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중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21개 국가는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를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Heino et al., 2013; Moon & Kim, 2019).
우리나라는 의료법 제 15조(진료 거부 금지 등)에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제 89조 제1호)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제 66조 제1항 제10호,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제4조)도 받게 된다. 그런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복지부 유권해석에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그동안 낙태에 대한 진료 거부권이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논의된 바가 없다. 다만 대한의사협회 의료법 주요조문해설(Korean Medical Association, 2017)에 의하면 ‘환자가 의료인으로서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의료인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어 낙태에 대한 거부권이 이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의료법 제15조 자체가 진료 거부 금지를 목적으로 한 법률이라 이에 준용할 것을 기대하기보다 개정되는 낙태 관련법에 거부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위원회 입장이다.
윤리적 이유로 진료 거부권이 논의된 바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제19조(연명의료중단등결정의 이행 등)에는 ‘담당의사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을 거부할 때에는 해당 의료기관의 장은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담당 의사를 교체하여야 하며, 이 경우 의료기관의 장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 거부를 이유로 담당의사에게 해고나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낙태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가 낙태 관련 의료 행위나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위원회에서는 낙태 진료에 대해 거부권보다는 ‘선택권’이라고 표현하기로 하고, 전공의를 포함한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을 다음과 같이 요구하기로 하였다.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에 대한 인정 요구안]
1)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선택권을 가진다.
2) 1항은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때는 예외로 한다.
3) 모든 산부인과 의사는 다음의 경우를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하거나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
-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하거나 제공하는 경우
4) 위 결정을 낙태법 개정에 명문화한다.
2. 낙태 시술자
헌재는 이번 헌법불합치 판결에서 2010년 조산사가 제기한 위헌소원에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결정은 이번 결정과 저촉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한다고 하였다.
현행 형법 제270조 1항에 의하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경우 의사와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같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형법이 제정될 1953년에는 우리 사회에 의사가 부족했던 시대로 낙태에 의사 외에 한의사, 조산사와 의료인이 아닌 약제사 또는 약종상까지 관여하던 시대라 같은 처벌 기준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형법 제269조 2항에 의하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는 부녀의 자기 낙태죄와 같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어 있어 일반인에 의한 낙태 조력이 의료 업무 종사자에 의한 낙태 보다 낮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이는 이번 헌재의 판결문 중 합헌 의견에 나와 있듯이 ‘낙태는 대부분 낙태에 관한 지식이 있는 의료업무종사자를 통해 이루어지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헌재의 판결 이후 발의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도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개정법을 위반하여 낙태하는 경우는 과태료가 500만 원 이하로 일반인에 의한 개정법 위반 낙태의 경우 과태료 200만 원 이하보다 처벌 수준이 강하다(Lee, 2019a). 이렇게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를 더 약하게 처벌하는 것은 여성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여성의 안전을 위해 약물 낙태를 포함한 낙태 시술자는 산부인과 의사로 한정하고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는 처벌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3. 시술의 체계
1) 시술 의료기관 안내 체계
의사의 낙태 거부권 보장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여성의 낙태 접근성 문제다. 낙태 접근성을 위해 보건복지부 상담 전화나 현재 이용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 찾기를 통해 시술 의료 기관을 안내하려면 시술 기관에 대한 지역별 파악이 필요하다. 또한 낙태 시술을 안하는 산부인과가 낙태를 원하는 환자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도 시술 기관에 대한 안내 체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술 의료기관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시술 의사들이 느낄 부담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시술 기관이 아닌 ‘미시술의료기관 신고제’를 통해 시술 의사들의 부담을 감소시키면서 여성들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시술 거부 의사들의 권리도 보호할 것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2) 상담제도
헌재는 이번 판결문에서 입법자는 상담 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앞서 우리 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 재량을 가진다고 하며, 낙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년)에 의하면 응답자의 97.5%가 인공임신중절 전후에 의료적 상담이 필요하며, 97.7%가 의료 상담 외 심리 정서적 상담이 필요하고 출산 양육 관련 정부 지원 정책 상담은 96.7%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여 낙태 관련 상담 제도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Lee, 2019c). 또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안전한 낙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도 안전한 낙태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상담을 제시하고 있다(WHO, 2012).
이처럼 낙태 전후 상담 제도에 대한 필요와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통해 국민에게 제공되어야지 시술 의사에게 상담 등 비의학적 낙태 결정 과정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위원회의 입장이다. 일반적인 의료 시술과 마찬가지로 시술 의사는 시술 과정만 책임지고 담당하는 것이 마땅하며 만약 낙태에 대해 시술 의사에게 상담 의무가 추가될 경우 별도의 상담료 책정은 필수일 것이다.
지금까지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뿐만 아니라 계획 임신이나 피임에 대한 상담을 하는 경우도 상담료가 진료 수가로 인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계획 임신과 피임에 대한 상담 수가도 신설하여 산부인과 의사에 의한 효과적인 낙태 예방 상담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4. 의학적 측면을 고려한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시기
보사연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년) 결과 우리나라 여성들의 임신 중절 시기는 평균 6.4주이며 8주 이하가 84%, 12주 이하가 95.3%로 대부분 임신 초기에 낙태하는 것을 알 수 있다(Lee, 2019c). 이는 외국과 달리 산부인과 전문의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우리나라 의료 환경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하다. 헌재도 이번 판결문에서 낙태로 인한 모성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는 임신 8주 이후 각각 2주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하며 이른바 ‘안전한 낙태’를 위해서는 임신 제1삼분기에 잘 훈련된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낙태가 시행되고 낙태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이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에 이정미 의원의 모자보건법 개정 발의안에서는 임신 14주 이내는 사유의 제한 없이 임산부의 요청만으로 낙태가 가능하게 했다(Lee, 2019a). 이에 대해 학회는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은 합병증 위험이 증가하고 태아 검사 및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가능한 임신 14주 까지가 아니라, 비교적 안전하며 태아 검사가 어렵고 대부분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는 임신 10주(70일: 초음파검사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위원회의 논의에서 임신 12주까지 허용하자는 의견은 있었지만 임신 14주까지 임부의 요청만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의견은 없었다. 또한 임신 10주부터 태아 DNA 선별검사(NIPT, non-invasive prenatal test)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태아 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감안하여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는 태아에 대한 의학적 개입이 이뤄지기 전인 임신 10주(70일) 미만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에 최종적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며 임신주수는 초음파검사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를 기준하기로 하였다.
5. 의학적 낙태 사유: 태아 사유와 모체 사유
산전 검사에서 태아의 장애나 질환이 진단되는 경우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치료하거나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이유로 낙태하는 것은 의학적 필요에 의한 낙태가 아니라 의학적 진단에 따른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라 할 수 있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에 대한 의무를 부과해서는 안 되며 산전 진단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출생아의 이상을 이유로 부모의 낙태할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법적 책임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위원회의 입장이다.
1999년 대법원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한 부모가 이를 산전에 진단 못한 의사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사건 선고 98다22857 판결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다운증후군은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여 부모가 태아가 다운증후군에 걸려 있음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태아를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이어서 부모의 적법한 낙태 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Supreme Court of Korea, 1999). 이는 법적으로 인공임신중절 사유에 해당되는 태아 이상의 경우는 부모에게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이 있으므로 의사가 이를 산전 진단하지 못하면 부모의 낙태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운증후군을 비롯하여 생존가능성이 높은 태아 이상이 진단되는 경우에도 많은 부모들이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이나 그렇다고 다운증후군과 같은 태아 질환이 반드시 산전 진단을 하여 낙태해야 하는 질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다.
위원회에서는 낙태 허용 범위에 태아 사유를 포함하는 것에 반대하며 임신 10주 이후에 사회 경제적 사유의 낙태가 허용될 경우 태아 사유를 별도로 정하지 말고 사회경제적 사유에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임신 10주 이후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 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범위와 절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기로 하였다.
(1) 모체 사유: 임부 생명에 대한 위험 또는 건강 상태의 중한 위험이 의학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2) 태아 사유: 출생 전후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3) 상기 의학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와 해당 질환 과목 전문의를 포함한 위원회’에서 승인한다.
또한 사회경제적 사유의 허용 기간은 정부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여론 수렴을 거쳐 결정하도록 한다.
6. Mifepristone 도입
2017년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유도제(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에 대한 청와대 청원에 23만여 명이 참여하며 Mifepristone에 의한 약물 낙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Cheong Wa Dae, 2017).
보사연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 결과에서 전체 낙태 경험자(756명) 중 약물 사용자는 9.8% (74명)로 자연유산유도약(미프진 등 인공임신중절약)이나 유사약 사용자로 지인·구매대행(22.6%), 온라인(15.3%) 등을 통해 구매하거나 위궤양에 사용되는 약물(싸이토텍 등 자궁수축유발) 등을 의사처방(62.1%) 받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Lee, 2019c). 또한 이 조사에서 약물 사용자 74명 중 53명(72%)이 약물로 인공임신중절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 등에서 추가로 수술을 실시하였다고 응답하여 불완전 유산 등 약물 낙태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에 Mifepristone 국내 도입은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는 것이 위원회 입장이다.
또한 약사법 제23조 4항에 의하면 응급환자 및 정신질환자,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등 의학적 필요와 환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는 의약 분업 예외 약품 지정에 대한 규정이 있다. Mifepristone도 국내에 도입되면 안전한 사용과 여성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하여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의 입장이다.
7. 배우자 동의
1973년도에 제정된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하면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낙태할 수 있는데 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국가 중 낙태 시 배우자 동의 요건을 요구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터키 3개국뿐이다(Jang, 2019).
일반적인 의료 시술 시 의료법 제24조 2항(의료행위에 관한 설명)에 의하면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 환자 본인에게 설명하고 동의 받도록 되어 있어 성인의 경우 환자의 동의만으로 일반적인 의료 시술을 하고 있다.
위원회 논의 중에 낙태 시술에 있어 배우자 동의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배우자 동의를 삭제하는 것으로 위원회 입장을 정하였다.
8.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현행 모자보건법상 합법 낙태에 대해 연령에 대한 동의 제한 규정은 없다. 또한 의료법 제24조 2항에도 설명 및 동의 의무에 대한 연령 규정은 없으며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수술 등을 하게 되어 있는데 미성년자라 하여 의료법상 의사 결정 능력이 자동 부인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의료 관행상 미성년자의 의료적 처치 및 수술의 경우 부모나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개별법에 동의에 대한 연령 규정을 별도로 두는 경우가 있는데 연명의료결정법에는 19세, 장기기증에 관한 법률에는 16세로 되어 있다. 낙태에 관한 법률에도 동의 연령을 규정하여 그 이하의 경우 부모 또는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Jang, 2019; Kim & Lee, 2019).
동의 연령을 법규화하면 부모에게 낙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미성년자의 경우 수술이 지연되거나 불법 낙태를 찾는 등 합법 낙태에 대한 접근성을 낮출 우려가 있다. 그러나 동의 연령을 정하지 않고 미성년자도 본인의 동의만으로 낙태하게 하면 의료 분쟁 발생 시 부모의 항의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미성년자의 낙태 시술에 있어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 미성년자가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 단계를 거부하는 경우는 정부가 정한 상담 및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할 것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9.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
현재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의하면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대한 처분 기준에 형법 제270조를 위반하여 낙태하게 한 경우가 포함되어 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 처분을 병과 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행정처분을 받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 중에 낙태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여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의 개정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결 론
그동안 위원회에서 정리한 낙태죄 개정에 대한 산부인과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1. 산부인과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에 대한 인정 요구안
1)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선택권을 가진다.
2) 1항은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때는 예외로 한다.
3) 모든 산부인과 의사는 다음의 경우를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1)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하거나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
(2) 낙태 관련 의료 행위와 시술기관으로 안내 등 관련 절차에 참여하거나 제공하는 경우
4) 위 결정을 낙태법 개정에 명문화한다.
2. 여성의 안전을 위해 낙태 시술자(약물 낙태 포함)는 산부인과 의사로 한정하고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는 처벌을 강화한다.
3. 여성의 접근성 보장과 의사의 거부권 보호를 위해 ‘미시술 의료기관 신고제’를 한다.
4. 시술 의사는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시술 과정만 담당한다.
5. 의학적 측면을 고려한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70일: 초음파검사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미만으로 한다. (소수 의견: 임신 12주)
6. 임신 10주 이후 태아 사유의 낙태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포괄한다.
7. 임신 10주 이후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 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범위와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모체 사유: 임부 생명에 대한 위험 또는 건강 상태의 중한 위험이 의학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2) 태아 사유: 출생 전후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3) 상기 의학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와 해당 질환 과목 전문의를 포함한 위원회’에서 승인한다.
8. 사회경제적 사유의 허용 기간은 정부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여론 수렴을 거쳐 결정하도록 한다.
9. Mifepristone 도입 여부는 국내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 도입 시에는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하여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한다.
10. 배우자 동의는 삭제한다(소수 의견: 배우자 동의 존치).
11. 미성년자의 낙태 시술은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단 미성년자가 부모 등 법정 보호자의 동의단계를 거부하는 경우는 정부가 정한 상담 및 승인 절차를 거친다.
12. 현행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서 행정처분하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 규정 중에 ‘낙태’ 조항은 삭제하도록 개정한다.
이상은 낙태법 개정에 관한 쟁점 중에 의학적 이슈에 대해 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이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개정될 낙태법과 관련 제도는 산부인과 진료 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위원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낙태법 개정 이후 전개될 의료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Notes
저자들은 이 논문과 관련하여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음을 명시합니다.